호주 워킹홀리데이 <브루니 아일랜드 여행> D+300
캠핑장에서 어느 덴마크에서 온 여자를 만났다. 이름은 리네. 우리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알고 보니 리네도 오지 체리에서 일하고 있었고, 우리는 몇 번 문자를 주고 받았다. 그러다 브루니 아일랜드에 함께 가기로 결정.
출발 전 날, 리네가 독일인 친구를 한 명 데려왔다. 이름은 스티브. 스티브는 멜번 가구 공장에서 일하다가 타즈매니아에 여행 차 왔다고 했다. 그는 커다란 미쓰비시 4WD 차량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비용을 절약할 겸 그의 차에 타고 브루니 아일랜드에 가기로 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운이 좋다면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수도 있었다. 근 5일간 KP가 4-5로 높았고, 무엇보다도 나는 며칠 전 포트 휴온에서 오로라를 본 경험이 있었다. 배를 타고 브루니 아일랜드에 내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넥neck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 남쪽으로 달렸다. 운 좋게도 하얀 왈라비도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날 저녁이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저녁을 먹었고, 나름 캠프 파이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리네는 지난 번 로드 트립 때, 어느 중국인 1명과 독일인 1명과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만 중국인 얘에게 설거지를 시키거나, 그녀의 말랑말랑한 피부가 신기해서 '펫pet' 같았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또, '아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해서 아시아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들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듣고 웃어 넘기며, 조금 불편한 이야기들은 돌려가며 이야기 했지만 리네의 편견 어린 아시아 이야기는 끝날 줄이 몰랐다.
하루가 넘도록 이어지는 리네의 이야기를 애써 괜찮은 듯 듣던 나는 참다 못해 결국,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건 아시아 인에 대한 편견이고, 나는 아시안 인으로서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고야 말았다. 즐겁게 지난 여행을 이야기 하던 리네는 당황해서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해? 말 하지 말아야 해?'라고 대꾸했다.
나는 '네가 만난 아시아 사람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아시아인일 뿐이라고. 내가 호주 사람으로부터 차별을 당했다 해서 호주 사람 모두가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할 수 없듯이, 누구는 이방인들을 환대하고, 누구는 그들을 경멸하기 마련이라고, 아시아인이라는 범주에 모든 사람들을 집어 넣어 일반화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말했다. 그렇게 서먹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텐트로 헤어졌다.
텐트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여행 시작부터 리네는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을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고, 그것을 반복하며 직접적인 행동으로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스티브와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리네와 함께 하는 건 불편했고, 더 이상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없을 거 같았다.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텐트를 걷었다. 리네와 스티브를 깨워 떠난다고 말하려 했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리네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자리를 떴다. 선착장까지는 60키로미터였다. 하루를 꼬박 걸어도 갈 수 없는 거리였다.
북쪽으로 가는 길은 하나였고, 세시간 쯤 걸었을까. 리네와 스티브가 탄 차가 내 옆을 지나다 멈춰섰다. 리네가 말했다. '진짜 걸어가려고?'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응' '그래, 당연히 할 수 있겠지.' 리네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그녀는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을거라는 뉘앙스였다. 혹은, 애써 웃으며 멋쩍어진 분위기를 어찌 해보려는 것이었을까. 차는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일을 한 뒤, 기대에 차 떠난 여행이었다. 즐겁기를 기대하고 온 여행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게 될 줄이야.
터벅 거리며 다섯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15키로 미터를 걸어왔고, 아직 45키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노숙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차가 멈춰섰다. 양쪽 사이드 머리를 하얗게 밀고 가운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어느 아저씨가 차에 타겠냐고 물었다. 첫 인상에 겁이 났지만, 트렁크에 실린 두 마리의 작은 개들을 보니 마음이 좀 놓여 탑승.
아저씨는 오이스터 팜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몇 개월 일 해 볼 생각이 없냐 물었다. '오호라?' 솔깃한 조건이었다. 내 비자는 2개월 정도 남았었고, 어딜가나 일자리 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터.
그러나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섬에서 또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이 아저씨를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 아저씨는 1시간 정도를 달려 나를 선착장까지 데려다 줬다. 그리고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배를 타고 나와 차를 타고 호바트에 갔다. 아저씨에게 가장 중요한 임금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숙식을 모두 제공하고 시간당 15불 어떠냐고 물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거절했다. 나는 외딴 섬에 덩그러니 남아 만족스럽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또한 연어 공장에서 일한 뒤로, 임금과 복지에 대한 내 눈은 조금 높아져 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도와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같이 일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사람 필요하시면 검트리에 올리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거에요.'라는 요지로. 아저씨는 섭섭해 했지만, 결국 마지막엔 쿨하게 'Okay'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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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 날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게 조금 성급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 리네와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더라면 조금 삐걱거렸을 지언정, 우리의 여정은 잘 마무리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시 생각하니, 근 1년의 호주 생활 동안 암묵적으로 느껴 온 차별에 대한 답답함이 그 날로 분수령이 됐던 게 아닌가 싶다.
리네는 2년 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곧 덴마크로 돌아간다 했다. 지금쯤 차와 캠핑장비를 모두 판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무사하게, 건강히 잘 돌아가기를.
출발 전 날, 리네가 독일인 친구를 한 명 데려왔다. 이름은 스티브. 스티브는 멜번 가구 공장에서 일하다가 타즈매니아에 여행 차 왔다고 했다. 그는 커다란 미쓰비시 4WD 차량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는 비용을 절약할 겸 그의 차에 타고 브루니 아일랜드에 가기로 했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운이 좋다면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수도 있었다. 근 5일간 KP가 4-5로 높았고, 무엇보다도 나는 며칠 전 포트 휴온에서 오로라를 본 경험이 있었다. 배를 타고 브루니 아일랜드에 내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넥neck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고 남쪽으로 달렸다. 운 좋게도 하얀 왈라비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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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니 아일랜드. 넥 포인트.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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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니 아일랜드.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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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니 아일랜드.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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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니 아일랜드. 2017 |
문제는 그 날 저녁이었다.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저녁을 먹었고, 나름 캠프 파이어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리네는 지난 번 로드 트립 때, 어느 중국인 1명과 독일인 1명과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꾸만 중국인 얘에게 설거지를 시키거나, 그녀의 말랑말랑한 피부가 신기해서 '펫pet' 같았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또, '아시아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해서 아시아에 대한 편견이 담긴 말들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듣고 웃어 넘기며, 조금 불편한 이야기들은 돌려가며 이야기 했지만 리네의 편견 어린 아시아 이야기는 끝날 줄이 몰랐다.
하루가 넘도록 이어지는 리네의 이야기를 애써 괜찮은 듯 듣던 나는 참다 못해 결국, '너가 그렇게 말하는 건 아시아 인에 대한 편견이고, 나는 아시안 인으로서 네가 그렇게 말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고야 말았다. 즐겁게 지난 여행을 이야기 하던 리네는 당황해서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해? 말 하지 말아야 해?'라고 대꾸했다.
나는 '네가 만난 아시아 사람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한 명의 아시아인일 뿐이라고. 내가 호주 사람으로부터 차별을 당했다 해서 호주 사람 모두가 인종 차별주의자라고 할 수 없듯이, 누구는 이방인들을 환대하고, 누구는 그들을 경멸하기 마련이라고, 아시아인이라는 범주에 모든 사람들을 집어 넣어 일반화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말했다. 그렇게 서먹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텐트로 헤어졌다.
텐트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생각해보니, 여행 시작부터 리네는 계속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독일을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었고, 그것을 반복하며 직접적인 행동으로로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스티브와 함께 여행하고 싶었다. 그러나 리네와 함께 하는 건 불편했고, 더 이상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없을 거 같았다.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텐트를 걷었다. 리네와 스티브를 깨워 떠난다고 말하려 했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리네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자리를 떴다. 선착장까지는 60키로미터였다. 하루를 꼬박 걸어도 갈 수 없는 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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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배낭을 짊어지고 나왔다.' 브루니 아일랜드.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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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풍경. 그러나 걸어 가기엔 너무 멀었던 길. 브루니 아일랜드. 2017 |
북쪽으로 가는 길은 하나였고, 세시간 쯤 걸었을까. 리네와 스티브가 탄 차가 내 옆을 지나다 멈춰섰다. 리네가 말했다. '진짜 걸어가려고?'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응' '그래, 당연히 할 수 있겠지.' 리네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그녀는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그런 고통스러운 일을 묵묵히 해낼 수 있을거라는 뉘앙스였다. 혹은, 애써 웃으며 멋쩍어진 분위기를 어찌 해보려는 것이었을까. 차는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금새 시야에서 사라졌다.
'후-'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일을 한 뒤, 기대에 차 떠난 여행이었다. 즐겁기를 기대하고 온 여행에서, 이렇게 고생을 하게 될 줄이야.
터벅 거리며 다섯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15키로 미터를 걸어왔고, 아직 45키로미터를 더 가야 했다. 노숙을 생각하고 있을 때, 한 차가 멈춰섰다. 양쪽 사이드 머리를 하얗게 밀고 가운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어느 아저씨가 차에 타겠냐고 물었다. 첫 인상에 겁이 났지만, 트렁크에 실린 두 마리의 작은 개들을 보니 마음이 좀 놓여 탑승.
아저씨는 오이스터 팜에서 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몇 개월 일 해 볼 생각이 없냐 물었다. '오호라?' 솔깃한 조건이었다. 내 비자는 2개월 정도 남았었고, 어딜가나 일자리 구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터.
그러나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섬에서 또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이 아저씨를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 아저씨는 1시간 정도를 달려 나를 선착장까지 데려다 줬다. 그리고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배를 타고 나와 차를 타고 호바트에 갔다. 아저씨에게 가장 중요한 임금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숙식을 모두 제공하고 시간당 15불 어떠냐고 물었다. 나쁘지 않았지만, 거절했다. 나는 외딴 섬에 덩그러니 남아 만족스럽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또한 연어 공장에서 일한 뒤로, 임금과 복지에 대한 내 눈은 조금 높아져 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도와주신 건 정말 감사하지만, 같이 일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사람 필요하시면 검트리에 올리면 쉽게 찾으실 수 있을거에요.'라는 요지로. 아저씨는 섭섭해 했지만, 결국 마지막엔 쿨하게 'Okay'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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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 날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게 조금 성급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때, 리네와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더라면 조금 삐걱거렸을 지언정, 우리의 여정은 잘 마무리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계속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다시 생각하니, 근 1년의 호주 생활 동안 암묵적으로 느껴 온 차별에 대한 답답함이 그 날로 분수령이 됐던 게 아닌가 싶다.
리네는 2년 간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곧 덴마크로 돌아간다 했다. 지금쯤 차와 캠핑장비를 모두 판 돈으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디, 무사하게, 건강히 잘 돌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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